동물의 존엄성을 법적으로 인정해줘야 한다는 이야기도 했다.
한강은 최종 후보까지 올랐다.
박근혜정권의 블랙리스트는 과거 독재정권의 검열과는 달리 신체적 위해를 가하지 않는 반면 철저하게 제도적 불이익을 준다. 열악한 조건에서 창작하는 문화예술인에게 정부 지원을 끊고 외부 지원을 차단하는 저급한 검열방식인 것이다. 블랙리스트의 명분을 여전히 종북·좌파세력에 대한 대응에서 찾고 있으나 실제와는 너무 큰 괴리가 있다는 것도 눈에 띈다. 언론에 공개된 9473명의 블랙리스트 명단은 세월호사건의 진상규명을 요구하거나 선거에서 문재인과 박원순을 지지한 사람들로 알려졌는데, 이들 모두를 종북·좌파로 규정하는 것은 우스꽝스러울 따름이다.
한강의 영예는 무엇보다 작가 개인의 영예여야 마땅하다. 작가에 따르면 연작소설 『채식주의자』는 1997년에 발표한 단편 「내 여자의 열매」로부터 자라나왔다고 한다. "한 여자가 아파트 베란다에서 식물이 되고, 함께 살던 남자는 그녀를 화분에 심는 이야기였다. 언젠가 그 변주를 쓰고 싶다는 생각을 그때 했다."('작가의 말') 이야기와 상상력의 숙성 과정을 거쳐 세편의 연작소설로 출간된 게 2007년이니 십년이 걸린 셈이다. 작품을 쓰는 동안에는 손가락 관절과 손목 통증으로 컴퓨터 자판을 두드릴 수 없는 상황이어서 손으로 글을 써 타이핑을 부탁하거나 볼펜을 거꾸로 잡고 자판을 눌렀다는 고백도 나온다.
작가는 국가나 민족의 '대표'가 아니라 개인으로서 글을 쓴다. 그 글쓰기에 여러 가지 것들이 담길 수 있겠지만, 그 성취는 그 개인의 것이다. 그러니 한 작가의 외국문학상 수상을 두고 국가와 민족의 이름을 들먹이는 촌스러운 짓은 어울리지 않는다. 그리고 이번 수상으로 한국문학의 수준을 인정받았다는 유치한 말도 그만하자. 작가는 그런 인정을 받기 위해 글을 쓰는 게 아니다. 국가와 민족을 대표해서 글을 쓰는 것도 아니다. 작가는 그냥 자기가 잘할 수 있고, 하고 싶은 이야기를 쓸 뿐이다. 모든 것에서 자유로운, 한 개인으로서 글을 쓰는 작가가 좋은 작품을 쓴다.